Black Nuance
“아무도 없는 밤, 큰 유리창과 달빛만이 거대한 건축구조물 사이로 비스듬히 보이고 고요하기만 하다. 작은 바스락 소리에도 스산하게 누군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비어 있지만 가로 지르는 큰 기둥 뒤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차가운 공간이다.”
《검은 기둥의 감각》은 공간의 중압감에 짓눌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미스테리를 보이는 전시이다. 공간과 오래된 물건, 반사되는 거울 속 또다른 설정은 곧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묵직한 기운을 뿜는다.
항상 사건은 눈앞에서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가만가만 수면 위로 떠오른 몇몇 개의 단어들을 퍼즐처럼 맞추어 보면 그날의 진실이 다가오는데, 그것은 대부분 CCTV, 블랙박스, 핸드폰 카메라에 잡힌 어스름한 물체, 인스타그램의 짜투리사진 등이다. 우리는 인지하지 않아도 너무 많은 사건의 단서들을 길거리에 뿌리고, 과잉된단서들이 집합을 보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새로운 파놉티콘의시대에 살고 있고, 나의 정보들은 끊임없이 어딘가에기록된다. 사각지대의 뜻은 어느 위치에서인가사물이 눈으로 보이지 않게 되는 각도를 뜻하는데, 복잡한 도시에서 사각지대는 시시각각 CCTV의 위치에 따라 바뀌어 간다. 공간과 접합된 무거운 공기는 이제 사람이 개입되어도 수시로 바뀌어 가는 시선의 교차 속에서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낡은 누군가의 옛 물건, 스러질 것 같은 나무와 뜻하지 않은 향기는 아날로그만 향수를 불러 일으키지만 현대사회의 신문물과 겹쳐지면서 미스테리한기운을 더 뿜어낼 뿐이다.
두 개의 기둥은 실은 세 개일 수도 있다. 전시에서 보이는 기둥은 몇 개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기둥은 시, 공간을 초월한 상상의 기둥일 수도 있다. 수십 년의 차이를 두고 새로운 날들로 인식되는 새로운 작동 시스템에 적용되는 코드로 이루어진 기둥일 수도 있다.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관객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