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s From the Walls
하얀 벽의 고백
2023. 3. 18 - 4. 9
박관우, 신선주, 신창용, 이경미(PROJECT VIAB), 이연숙, 조영주
여기, 벽이 서있다. 수용소의 거대한 담장에서부터 쇼핑몰을 구획하는 단지, 지하철 플랫폼, 일터의 파티션, 화장실 칸, 개인의 방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크고 작은 벽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공간을 분리하고 가치를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작동되는 사회에서 개인은 자기 보존을 위해 벽들을 계속 세운다. 물리적인 방식뿐만 아니라 인식 속에서도 말이다. 이 벽들은 나(우리)와 타인(그들)을 구분 짓고 자신의 취약성을 벽 너머로 밀어버리는 수단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와의 연결 지점이 없어야 한다. 벽을 사이에 두고 밀어낸 그들은 드라마틱한 스토리로 소비되기도 하고 자본주의 산업 체계 안에서 일종의 노동력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나’와는 달라서 참 다행이다! 벽들은 이렇게 두려움을 내려놓고 안심하도록 만든다.
전시 <하얀 벽의 고백>에서는 벽 너머의 존재들을 불러낸다. 여기로 소환된 엄마, 이주민, 히어로는 그간 벽 너머에 존재하던, 당신이 세운 벽에 의해 규정되는 인물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고정된 역할과 쓰임의 틈새에서 미끄러지거나 자기식대로 전유한 주체들이다. 육아와 돌봄이라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반복에서 소진되기를 멈추고 자신의 현재를 드러내며 연대하기 위한 리듬을 발견하거나, 시공간 여기서 저기로의 이동과 정착의 과정을 통해 고정된 삶의 양식과 사회적 인식에 대항하기도 한다. 또한 자아실현의 압박에서 벗어나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며 유유자적한 시간을 즐긴다. 이들은 일상에 찌들고 사회적 정체성에 종종 회의감을 갖는 당신과 일면 닮아있다. 벽을 가운데 두고 당신과 그들 사이에 가로막혀있던 연결선이 미약하게나마 생기는 순간, 대상화했던 시선을 거두고 그들을 바라보며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다. 우리 모두의 취약성에 공감하는 몸짓으로서 말이다.
전시의 마지막에는 화이트큐브의 흰 벽에 조응하는 ‘하얀 벽’ 그 자체를 마주하게 된다. 이제 당신이 세워둔 벽 너머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